음악을 듣는다는 건, 결국 나를 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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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음악은, 우리가 스스로를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소음처럼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 어떤 멜로디는 오래 남고, 어떤 가사는 잊히지 않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금 느려지고, 내 안의 말들이 조용히 깨어난다는 것.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건 화면 속 재생 버튼이 아니라 손끝에서 돌아가는 검은 원판, 투박한 카세트, 혹은 작은 은빛 CD일 때가 많습니다. 이건 단순히 ‘음악 감상’이 아닙니다. 조금은 낡고 불편한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플레이 버튼 대신, 바늘을 내리는 의식

스트리밍은 너무 빠릅니다. 스킵, 다음 곡, 자동 재생. 모든 것이 자동으로 흘러가고,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이닐을 재생할 때는 조금 다릅니다. 턴테이블의 먼지를 털고, 속지를 꺼내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리는 순간. 음악이 ‘시작된다’는 감각이 생깁니다. 준비의 시간이 있고,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를. 내가 듣고 싶은 것, 듣고 싶지 않은 것. 음악이 흘러나오기 전에 이미 나는 ‘나’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듯, 느린 행위에는 자각이 따릅니다. 한 연구는 음악을 물리적으로 재생하는 과정 자체가 자기 인식(self-reflection)을 높인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라 ‘듣기 위한 준비 과정’이 의식의 전환을 불러온다는 것이죠.

카세트의 “불완전함”이 주는 위로

카세트를 넣을 때, 나는 가끔 웃습니다. 삐걱대는 소리, 눌린 테이프, 음의 흔들림. 스트리밍 세상에서는 “오류”일 뿐인 것들이, 이곳에선 추억이 되고 감정이 됩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음악도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짜 마음이 드러나곤 합니다. 어쩌면 음악의 본질이란 건 ‘오차 없는 재생’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다시 카세트를 찾는 것도 그 때문일지 모릅니다. 어떤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카세트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했습니다. (관련 기사) 속도가 느려도, 음질이 조금 떨어져도, 그 안에는 ‘기억’이 있으니까요.

CD가 주는 또렷함, 그리고 안심

반대로 어떤 날엔, 나는 CD를 꺼냅니다. LP처럼 복잡하지도, 카세트처럼 흔들리지도 않죠. 깨끗하고 안정적이고, 정확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 명확함이 위로가 됩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 재생 버튼을 누르면 언제나 같은 음이 흐른다는 것. 단정한 질서 속에서 마음이 조금은 풀립니다. 그건 음악이라기보다 ‘안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CD는 어떤 날에는 약이 됩니다. 불안한 생각을 잠시 멈추게 해주는, 하나의 질서.

음악과 기억은 늘 함께 온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음악이 있었습니다. 첫 여행의 버스 안에서 들었던 곡, 시험을 끝내고 들었던 플레이리스트, 연애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앨범. 그 음악들을 다시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납니다. 장소도, 냄새도, 마음도 함께 돌아옵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음악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를 강하게 자극해 오래된 기억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이닐을 꺼내고, 테이프를 감고, CD를 삽입하는 행위는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시간 여행’일지도 모릅니다.

한 장의 음반이 하루를 바꾸는 방식

어떤 날엔 집에 들어오자마자 LP를 올립니다. 오늘 하루가 조금 엉켜 있어도 괜찮다고, 음악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날엔 비 오는 창가에 카세트를 넣습니다. 반복되는 피아노 멜로디에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습니다. 어떤 날엔 CD를 재생하고 침묵을 즐깁니다. 아무 생각 없이 트랙을 넘기며 하루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 모든 순간들이 쌓여 하루가 조금 달라집니다. 중요한 건 음반의 가격이나 수집량이 아닙니다. 음악이 내 하루에 들어오는 방식, 그것이 핵심입니다.

쇼핑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래서 저는 이제 LP를 살 때 ‘쇼핑’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택에 가깝습니다. 오늘의 나와 닮은 소리, 내일의 내가 듣고 싶을 것 같은 색. 한 장을 고르는 건, 지금 내 마음을 고르는 일과 비슷합니다.

Blayer의 진열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바로 그 ‘고르는 시간’입니다. 가격을 비교하고 리뷰를 보는 대신, 그냥 손이 먼저 가는 한 장을 집어듭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선택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이유를 몰라도 좋고, 이유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에게 권하고 싶은 단 한 가지

오늘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하나만 부탁하고 싶습니다. 단 한 장이라도, 손으로 듣는 음악을 경험해 보세요. 바늘을 내리는 소리, 카세트를 넣을 때의 촉감, CD가 돌아가는 미세한 진동. 그 모든 작은 순간들이 당신의 하루를 다르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음악을 듣는 일이 곧 나를 듣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렇게 당신의 삶에도, 한 장의 음악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참고 자료 & 더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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