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수집한다는 건, 결국 삶을 모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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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을 손에 들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잔잔해진다. 표지가 손끝에 닿는 느낌, 속지를 꺼낼 때의 냄새, 바늘이 내려가기 전의 조용한 숨. 음악을 수집하는 일은 결국 이런 순간들의 집합이다. 거창하지 않다. 그런데도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조각들이 모두 이 작은 순간 안에 들어 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한 장, 어릴 적 들었던 곡의 재발매반. 그렇게 시작된 수집이 어느새 책장 한쪽을 채우고, 나중엔 집 한쪽 벽을 차지한다. 그 안에는 장르도 시대도 뒤섞여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건 모두 ‘나’라는 사실이다.

시간을 담는다는 것

바이닐 한 장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다. 그건 한 시절이다. 어떤 계절, 어떤 감정, 어떤 시선. 그때의 내가 무엇을 보고,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20대 초반에 샀던 재즈 음반을 다시 들으면 그때 내가 살던 좁은 원룸이 떠오른다. 겨울의 끝자락,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바람까지 생각난다. 몇 년 전 여행지에서 샀던 카세트를 꺼내면 낯선 골목의 냄새가 되살아난다. 기억은 흐려지는데, 음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 음악이 나를 다시 데려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음악은 단기 기억보다 장기 기억을 자극하는 효과가 훨씬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수집이 쌓일수록 내 삶의 연대기가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한 장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거 다 언제 들어?” 솔직히 말하면, 다 듣지 않는다. 몇몇 앨범은 개봉조차 하지 않은 채 서가에 꽂혀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음악’이기 이전에 ‘기억’이고, ‘기록’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책장을 없애지 않는 것처럼, 음반 한 장을 듣지 않았다고 해서 수집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거기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한 시절이 물리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

아날로그의 힘: 손으로 만지는 시간

LP를 닦고, 턴테이블의 회전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리는 시간. 이 모든 과정이 귀찮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귀찮음이 우리의 시간을 느리게 한다.

디지털에서는 한 곡을 3초 만에 재생할 수 있지만, 아날로그는 그렇지 않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집중해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음악은 배경이 아니라 ‘중심’이 된다. 삶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 아날로그는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운다.

심리학자 스티븐 스티븐슨은 “의도적인 청취 행위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을 높인다”고 말한다.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위한 의식을 갖추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본다.

카세트와 CD, 불완전함과 질서의 공존

카세트는 늘 불완전하다. 약간의 잡음, 종종 늘어지는 음, 손으로 감아야 하는 번거로움.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주는 위로가 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매끈하지 않고, 계획대로 되지 않고, 가끔은 삐걱거리지만 결국 흘러간다.

반면 CD는 정돈된 세계다. 클릭 한 번이면 정확히 같은 소리가 반복된다. 이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안심한다. 카세트가 삶의 “우연”이라면, CD는 “예측”이다.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수집이란 결국 이 두 세계를 동시에 품는 일이다.

수집이 나를 만든다

한 장 한 장이 쌓여간다. 처음엔 그냥 음악이었는데, 어느새 그게 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서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여행 사진을 모으고, 어떤 사람은 편지를 모은다. 나는 음악을 모은다. 이건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살아온 시간의 증거이고, 앞으로 살아갈 방향의 나침반이다. 누군가 내 음반장을 들여다본다면, 아마 나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쇼핑이 아니라 삶의 확장

Blayer에서 새로운 음반을 고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건 내 삶의 어디쯤에 놓일까?” 그냥 소비가 아니다. 선택이다. 하나의 기억을 내일의 나에게 미리 선물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충동구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충동은 어쩌면 ‘지금의 나’가 미래를 향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모르니까. 오늘 마음이 간 곡이 언젠가 내 삶을 위로할 수도 있다. 음악 수집이란 결국 그런 믿음을 쌓는 일이다.

마지막 트랙을 넘기며

음악을 수집한다는 건 결국 삶을 모으는 일이다. 앨범 커버마다 사연이 있고, 트랙마다 의미가 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내가 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 좋은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음악이 쌓인 삶도 마찬가지다.

다음 앨범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나는 오늘도 새로운 시간을 산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수집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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